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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엄마랑 떠난, 서유럽 패키지에 대한 단상 ②

by 모모송이 2018. 1. 4.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는 지쳐갔다. 그런데 저 멀리서 누가봐도 패키지 가이드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00투어인가요?" 물었더니 맞단다. 우리 엄마의 근황(?)을 물으니 "나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네"였다.


첫 장기 비행이라 그렇잖아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혹시 문제가 될만한 물건을 캐리어에 담아오신걸까, 입국 심사 때 수상한 사람으로 보인건 아닐까, 온갖 걱정이 시작됐다.


다행히 40분쯤 지나서야 엄마는 패키지 일행 서너명과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 년만의 가족 상봉처럼 우리는 '꺅' 소리를 지르고 껴안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엄마와 투닥거리는 말 안듣는 딸인데, 공항에서 우리를 목격했다면 꽤 다정한 모녀로 보였을 것이다.


다행히 캐리어가 늦게 도착한 것 뿐이었다. 엄마는 캐리어 나오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발을 동동거리셨지만 다행히 패키지 사람들이 같이 있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인내할 수 있으셨다고.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알고보니 '인솔자'였다. 유럽처럼 여행 일정이 긴 패키지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패키지 사람들을 챙기는 인솔자가 있고, 각 도시에서 현지 가이드가 합류해 하루나 이틀을 같이 다니는 방식이었다.


우리 패키지는 프랑스 파리, 스위스 루가노와 인터라켄(융프라우), 이탈리아 밀라노와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남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의 런던을 가는 일정이다. 


공항에서 만난 우리는 여행사 버스를 타고 근처 호텔로 가서 짐을 풀었다. 본격 일정은 다음 날 시작이었다. 간략한 패키지 여행 후기를 정리해봤다.



1. 팀 분위기가 정말 중요하다

 

진짜 복불복이다. 좋은 사람들 만나면 진짜 즐겁고, 분위기 흐리는 사람이 한둘이라도 있으면 전체 분위기를 크게 좌우한다.


인솔자 말로는, 팀마다 분위기 메이커인 사람이 꼭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친해지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고. 인솔자는 "우리 패키지 분들은 다들 조용하시네요" 하신다.


첫날 버스에서부터 조용했다. 서로 간단한 고개 인사만 하고 각자의 파트너와만 얘기를 했다. 뭔가 어색한 기운만 감돌았다.

  

 

2. 인솔자·가이드의 역량은 더 중요하다

 

인솔자가 계속 따라다니고 도시마다 해설을 해주시는 가이드가 합류하는 방식인 만큼, 가이드는 도시마다 바뀌어서 좋을 때도 있고 별로일 때도 있지만 같이 해봤자 하루 이틀이라 괜찮다.


인솔자가 진짜 중요하다. 인솔자는 인천공항에서부터 끝까지 계속 같이 다니고, 버스로 4시간 넘게 이동하는 사이에도 마이크를 들고 얘기를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인솔자분은 너무 얌전하신 분이었다. 팀 분위기도 밝지 않은데, 인솔자까지 조용하신 분이어서 뭔가 신나는 여행의 느낌이 아니었다.


어느 도시를 갔을 때, 현지 가이드분이 개그맨 뺨치시는 언변의 소유자였는데, 다들 깔깔깔 웃고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지는 것을 보고, 만약 인솔자가 저런 스타일이었다면 정말 여행 내내 즐거웠겠다 싶었다.


암튼 전체 분위기는 인솔자의 역할이 진짜 중요하다는 것! 어느 여행사에서는 인기 인솔자(가이드) 투표해서 소개하고 그러던데 이왕 간다면 인기 높은 분의 상품을 골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여행 전체를 좌지우지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3. 한국 특유의 ‘비교 문화’의 딜레마?

 

둘째 날이었던가. 일정 중에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 쇼핑 시간이 있었는데, 프라다 명품을 산 사람과 안 산 사람들이 교묘하게 갈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프라다를 산 사람들끼리 명품 얘기하면서 친해지는 거랄까.


딱봐도 명품과는 안 친해보이는 부부가 계셨는데, 다들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 인솔자에게 ‘왜 1시간이나 자유시간을 주느냐’며 따지시는 모습 목격했다. 그 부부 중 아주머니가 나중에 나에게 조용히 오셔서 귓속말로 말한다. "아가씨도 뭐 샀어?" 


이때 느꼈다. 남이 옆에서 쇼핑할 때 아무것도 안 사면 의기소침해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4. 어르신들이 많다는 것. 나는 준가이드ㅠㅜ

 

패키지는 연령대가 높다.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자식들이 여행을 보내는 부부도 있었고, 결혼을 앞둔 아가씨와 엄마가 온 가족도 있었으며, 돈 많고 시간 많아 자주 여행다니는 아주머니들도 있었고, 20년 지기 친구들과 여행 온 아주머니 팀도 있었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어르신들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는 상황 자주 생긴다.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라서 나는 기분 좋게 다 해드렸다.


근데 너무 친절하게 해드린 나머지, 갈수록 나에게 다 물어보셔서 나중에는 너무나 귀찮았다. 쇼핑할 때 ‘이거 영어로 뭐라 써 있는 거냐’ 하는 것이 주였고, 심지어 식당에서 ‘이게 설탕 맞느냐’ 묻는 경우도 있다.


(식사 시간에는, 인솔자가 우리 음식 주문만 확인하시고 그 이후로는 안보이신다. 가이드와 인솔자, 버스 운전사는 밥을 따로 먹는다.)

 

어르신들이 엄마한테 ‘어쩜 딸을 이렇게 잘 키웠냐, 싹싹하다’고 칭찬하시는 말에, 효도하는 마음으로 ‘좋은 딸 코스프레’ 하느라 진짜 힘들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엄마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식사할때도 한 테이블에 보통 4명씩 앉는데, 이게 생각보다 불편하다. 엄마랑 둘이 얘기하면서 편히 먹고싶은데 매끼를 다른 2분이랑 마주하니까 좀 뻘쭘해서 대화를 해야하고 그래서 좀 불편했다.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젊은 내가 말도 제일 많이 하고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줌마들끼리 친해져 폭풍 수다를 떠시는 바람에 그 때부터는 맘 편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가 나중에 흐뭇한 표정으로 그러셨다. "우리딸이 새침한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싹싹한줄 몰랐네"

 

 

5. 부모님과 패키지 가려면, 가능한 고급 상품으로.

 

우리 팀에 여행을 진짜 많이 다니신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안가본 데가 없을 정도였고, 갔던 곳도 또 가시는 그런 시간많고 돈 많으신 아주머니셨다. 그런데 인품이 얼마나 뛰어나신지, 대화 몇마디만 해봐도 참으로 겸손하시고 좋으신 분이라는 것이 딱 느껴졌다.


그 아주머니께서, 우리 패키지는 식사 잘나오고 숙소 다 괜찮다고 계속 칭찬하셨다. 속으로 ‘더 저렴한 패키지는 대체 어떻길래...’했다. 더 저렴한걸로 왔음 어쩔뻔했나 싶기도. 사실 이태리에서의 숙소가 너무 맘에 안들었고 조식도 정말 형편없어서 다소 불만이었는데,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여행 코스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고, 가격에서 오는 숙소 및 식사 질에 차이가 큰 것 같았다.



6. 다양한 식사를 접할 수 있을거라는 허황된 기대는 접을 것.

 

이탈리아를 갔을 때였는데, 스파게티를 토마토로만 2번 줬다. 최소한의 크림, 토마토, 오일을 선택할 기회조차 없이.


매번 식당에 가면 알아서 똑같은 메뉴가 쭉 나온다. 단 한번도 음식을 택하는 기회가 없다. 모든 식사에 선택권이 없고 주는대로 먹어야된다.

 

스파게티를 알리오올리오만 먹는 나로서는, 이탈리아까지 와서 못먹고 가려니 진짜 눈물 날거 같았다.


이탈리아 방문은 처음이었는데, 오리지널 알리오올리오를 먹을 기대가 젤 컸으므로 상심이 더했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돈 지불할테니 알리오올리오를 주문해서 먹게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알리올리오가 나왔는데, 같은 패키지 팀 아주머니들이 ‘그건 무슨 파스타냐’ 등등 관심을 보이셔서 맘편히 먹을 수도 없었다. 시선 집중을 받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고 왠지 모르게 미안했달까.

 

다행히 가이드분이 식당이랑 친해서 추가 비용은 받지 않고 그냥 가도 된다고 하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개인의 메뉴 선택이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르르 다들 다른 걸 시킨다고 하면 가이드도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는 개인의 단독 행동이 굉장히 자유롭지 못하다.


 

 




7. 살인적인 스케쥴, 하지만 도전해볼만.

 

엄마가 다리 수술도 하신 경험이 있어서 오래 못걸으실 것 같아서, 진짜 걱정 많이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버스를 오래타서 그렇지, 오래 걷거나 오래 서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하다. 르부르 박물관을 1시간30분 만에 다 돌았으니 말 다했다.


오히려 멀미가 문제다. 멀미해서 고생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진짜 아무것도 못드시고 햇반으로 죽만 끓여 드시고, 열흘 내내 환자처럼 고생만 하시다 가셨다.

 

스위스 루가노에서는 고성을 올랐다가 바로 내려오는 일정이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보여서 엄마랑 나는 노천 카페에 앉아서 커피 마셨다.


가이드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양해를 구해야했지만, 진짜 그 40분의 여유가 너무 좋았다. 항상 급하게 움직이고 그랬는데, 혼자 여행온 것처럼 여유롭게 앉아 있으니 숨통이 트이며 '이제 살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 고성에 올라갔다 내려오신 분들이 ‘진짜 힘들었다, 안올라가시길 잘했다’고 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시 찍고 또 찍고 하는 살인적인 스케쥴이지만, 그래도 다양한 나라를 본 것이 패키지의 매력이긴 한 것 같다. 당시는 힘들었는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나름 알찬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께 여러 도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스위스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파리를 꼽으셨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좋아하실줄 알았는데 반대로 화려한 파리를 찍으시다니 진짜 의외였다. 패키지 다녀온 다음 해에, 엄마는 파리를 또 가셨다. 패키지로 일단 한바퀴 쭉 돌아보고, 맘에 드는 도시를 다시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8. 다같이 함께 하는 즐거움도 나름 있음

 

옵션이 거의 다 포함돼 있는 패키지였는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갔을 때 곤돌라와 수상택시가 두 개다 포함돼 있었다. 자유여행이었다면 나는 곤돌라만 탔을 것이다. 근데, 막상 두 개 다 타보니 예상외로 수상택시가 훨씬 재밌는 거였다. 패키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그 때 제일 많이 했다.

 

곤돌라를 탔을 때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 같이 타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우리는 포함돼 있었다. 배마다 성악가들이 다 타서 노래를 불러주는데, 다른 곤돌라 탄 사람들이 부러워서 쳐다보기도 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진짜 성악가라고. 곤돌라는 4명씩 묶어서 나눠탔는데, 우리 패키지 사람들 마주치면 정말 되게 반갑게 손흔들고 인사하고 박수치고 가장 신났던 순간이다. 열흘간 팀 생활하기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베네치아에서는 뭔가모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하다보니 어느 새 정이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상택시는, 가이드가 뒷자리 난간에 앉으라고 해서 무서웠는데, 막상 앉아보니 뻥 뚤린 오픈카를 탄 기분으로, 진짜 짜릿하고 최고였다. 밖으로 머리 내밀고, 베네치아 바닷길을 가르며 질주하는데 진짜 멋졌던 그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암튼 자유여행으로 오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경험이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9. 시간 스트레스


자유시간이 거의 없지만 가끔 관광지에서 40~50분 자유시간을 줄 때가 있다. 근데 약속 시간에 1분만 늦어도 좀 눈치가 보인다.


심지어 5분 전인데도, 다 모여있고 우리는 약속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도 뭔가 늦게 온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다들 5분 전에는 약속 장소에 모여있다. 불안하니까..ㅋ


그러다보니 제대로 맘편히 구경을 못한다. 골목골목 구경하고 싶은데도, 나도 모르게 약속 장소 가까이에서만 맴돌게 된다. 어떤 아주머니는 혼자 10분을 늦으셨는데, 진짜 30분 넘게 민망해하시면서 여기저기에 사과하셨다.


패키지 여행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다. 자유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 시간 못지킬까봐 늘 불안불안한 마음. 혼자 여행 다닐때는 산책하듯이 쉬엄쉬엄 다니는 스타일인데 나에겐 정말 힘들었던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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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떠난, 서유럽 패키지에 대한 단상 ③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