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공연

유진박,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by 모모송이 2019. 12. 15.



유진박.

한때 그는 '핫'했다.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려한 바이올린 실력을 자랑했고,

어설픈 발음이지만 나름 재미있는 입담으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미국의 줄리어드 출신인 그에게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8살에 최연소로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10세 때 오케스트라 협연을 하며 데뷔했다. 

이후 전자 바이올린으로 전향했고, 앨범을 발매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그 때가 10년 전쯤이었을까.


그즈음 우연한 계기로 그를 만나게 됐다. 


그는 TV에서 보던 화려한 비주얼과는 거리가 멀었다. 

눈동자는 초점이 없어보였고, 온몸이 축 늘어져있었다. 

뭔가 약에 취한 듯한 느낌이랄까.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잠시 얘기를 나눴었다. 

굳이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도 바이올린 해요"라고 솔직히 얘기했다. 


그러자, 초점없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멍하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정신이 든듯 했다. 

불꺼진 방에 불을 '탁' 켜듯, 나의 바이올린 이야기에 그의 마음에 불이 켜진 듯 했다. 


"전 요즘 모짜르트 5번 하고 있어요"

라고 했더니, 그가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너무 순수했던 그 미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는 갑자기 바이올린 연주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딴딴! 따라따라따라 따라라"하면서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원래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말을 잘 못했고, 

TV에서는 존댓말이 아닌 반말로 어설프게 이야기 하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는 생각보다 한국말에 더 어눌했고

거의 단어 나열의 반말 수준이었다. 


그런데 헤어질 무렵, 

그가 한 손을 높이 들고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모짜르트, 잘 해요!!"

그는 어린아이같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뜻밖에 뉴스에서 유진박의 소식을 듣게 됐다. 

유진박이 소속사로부터 감금과 폭행 등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포털과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며 난리가 났다.  

그의 조울증(양극성 장애)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평소 내 성격대로라면 지인들에게 

"뉴스 봤어? 나 얼마전에 유진박 만났었는데!"라며 

폭풍 이야기를 펼쳤을 것이다. 


그런데 차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내가 그를 만났을 당시, 그는 분명 감금과 폭행에 시달리고 있던 때였을 것이다. 


그의 상태가 많이 이상해보인다는 것을 느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나의 마음을 옭아맸다. 


이후로 그의 기사가 포털에 있어도 나는 차마 클릭하지 못한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그 생각의 끝에는 

늘 유진박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장면이 액자처럼 박혀서 나를 더 슬프게 한다. 


그의 소식을 듣는 것이, 

나는 아직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