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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 V

'그알' 작가 처우 논란..부조리와 아이러니의 이중주

by 모모송이 2018. 1. 29.


SBS 인기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발칵 뒤집어졌다.


바로 한 방송작가의 고발성 글 때문이다.


'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PD들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방송작가의 처우를 아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내부고발 수준인데,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문제가 많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굳이 애써 문제를 삼지 않았던 내용이다. 


왜일까. 바로 자신들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행'이라는 잔인한 틀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여기고 지내온 악습들. 고용노동부에 고발을 하려고해도 '관행이라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답변을 하는 나라,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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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방송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방송작가는 시나리오를 쓰는 드라마 작가와, 예능이나 시사 프로그램을 쓰는 구성작가로 나뉜다.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드라마 작가는 PD와 배우들을 아우를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구성작가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구성작가는 프로그램이 많을 뿐더러 한 프로당 10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TO가 잦아 도전하기가 쉬운데, 어느 직업군이나 TO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성작가로 일하는 선배들이 몇 있었는데, 그때는 어릴 때라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매리트가 매우 커보였다. 하지만 방송작가의 꿈을 갖던 이들의 대부분은 초반에 '포기'한다. 현실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선배들의 일상을 들여다본 후, 아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선배들도 진지하게 충고했다. "절대 이쪽에 발 들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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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방송작가는 '막내'부터 시작한다. 프로그램에는 메인작가와 서브작가, 막내작가가 함께 일한다. 막내작가는 말그대로 '막내'인데, 사실 '막내'로 불리는 것은 맞지만 '작가'로 불리기에는 참으로 애매하다.


아무도 막내작가에게는 좋은 글을 쓰고, 좋은 프로그램 기획해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누가 밤을 더 잘 새는가, 누가 더 전화를 잘 받고 잘 거는가, 누가 더 출연자들 비위를 잘 맞추는가, 누가 심부름을 더 잘하는가가 판단 요소다.


아주 오래전, 친한 작가가 막내작가 면접을 진행한다고 해서 잠시 들릴 겸 구경을 한 적이 있다. 여러명이 함께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으로 앉은 이들 중 아무도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글을 쓰고 싶고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묻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누가 자료 조사를 더 잘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실기시험 같은 것이 있었는데, 어떤 문제를 제시한다. 퀴즈의 답을 맞추기 위해 인터넷 자료찾기와 전문가 전화통화를 해야한다. 누가 문제를 빨리 푸느냐, 누가 팩트 확인을 정확히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즉, 글쓰기나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소양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발빠르게 전화를 돌리고 자료를 잘 찾는가가 중요하고, 서브나 메인 작가의 한마디를 기똥차게 알아듣고 착착 일을 해내는 사람을 선호한다. 작가가 아닌 '보조'의 의미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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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작가인 지인이 말해주는 현실은 정말 참혹했다. 새벽 3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한 후 오전 9시까지 집합시키는 것은 일상이었고, 주7일 내내 일을 한다. 거의 1분 대기조로 있어야 한다.


막내작가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메인이나 서브작가의 심부름만 깔끔하게 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었고, 커피 심부름은 물론, 출연자 뒤치닥꺼리, 심지어 일반인 출연자의 자녀들 돌보기도 그들의 몫이었다.


그 작가가 일하면서 막내작가로 들어온 이의 80% 이상이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20%가 안되는 인력이 살아남아 서브작가가 되고, 그 중에서도 중도하차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국 메인작가의 꿈을 꾸고 버티는 것인데, 연예인 지망생이 톱스타가 되는 확률만큼 어렵다. 아주 잘나가는 메인 작가는 정말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다.


작가의 처우가 비참한 것은 바로 비정규직인 '프리랜서' 신분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처우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려고하면 '너 아니어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식의 핀잔은 일상이다. 그만두라면 그만둘 수밖에 없는 파리 목숨인 것이다.


주 7일 근무에 1분 대기조로 일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페이를 받는다면 이렇게 비난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 막내작가들이 일하는 근무시간을 최저 시급으로 따져보면 얼마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요즘 법정 최저 시급이 7천 원대이다. 약 10여년 전, 막내작가들의 평균 월급은 80만원이었는데, 요즘은 많이 받으면 120만원 정도인 것 같다. 아주 최소한으로 따져 하루 10시간만 일한다고 쳐도, 시간당 4천원도 안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프로그램이 결방을 해도 방송국 직원인 PD는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 하지만 작가는 주급이 깎인다. 기껏해야 주당 30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프로그램이 결방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깎는 것이다.


방송을 쉬고 싶어서 쉬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이나 기타 특수한 경우로 강제 결방되는 것인데, 작가는 페이를 못받는다. 만약 큰 문제가 생겨 프로그램이 몇 주 결방하면, 작가들은 강제 백수가 된다. 어려운 생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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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구성작가 뿐 아니라 잡지 쪽도 마찬가지였다. 잡지기자가 되고 싶은 친구들은 에디터가 되기 위해 '어시'로 불리는 어시스턴트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페이를 받고 일했다. 겨우 차비와 점심값만 받는 수준이었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에서 최저 임금도 보장받지 못한채 일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경험과 인맥을 쌓기 위해 '열정 페이'도 감수하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더 크게 부각된 것은,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해왔던 '그것이 알고싶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 정의를 외치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조차, 악질적인 관행과 갑질이 난무한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작가 처우 논란은 이 사회의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하다. 


선배들도 그랬으니까, 관행이니까, 내가 정한 것은 아니니까, 라는 여러가지 이유로 모른척 했던 수많은 이들. 그들도 '갑질이 판치는 이 사회가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던 것이다. '갑질'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 모모송이 -